본문 바로가기

writing

UP

#1

 

"What's up" 미국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약간 조롱이 섞인 듯한 말투. 참으로 기분이 상했다. 내가 영어를 못할 거라 무시하는 건가. 나는 당당히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UP이 무엇이냐’ 물었으니 ‘UP은 위를 말한다’ 당당히 설명한 것이다. 당황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기대했다. 좀 더 나의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가랑이를 벌린 채 손가락 중 가장 긴 가운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다.

 

‘왓더퍽?’이라 말하면서 어이없어 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영어를 이해했다는 것에 놀란 것일까. 나는 미동 없이 몇 분을 있었고, 미국 녀석은 내게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늘의 장난이었을까. 그 때 갑작스레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내려쳤다. 그리고 재수없게. 천둥, 번개는 나의 가운데 손가락을 마치 피뢰침처럼 타고 들어와 내 몸을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기절했다. 다만 희미하게 그가 놀란 나머지 "I'm sorry"라고 한 후 도망가는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이 ‘Sorry'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2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온 몸이 타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둥 번개에 검해져 버린 나의 모습. 잘생긴 나의 얼굴은 어디 있고 거울 앞에는 흑인이 서있는 것인가. 괴로웠다. 눈물을 머금고 병원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슬픔을 잊고자 무작정 달렸다.

 

그. 런. 데.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달리는 속도가 이건 마치, 초능력자 같았다. 달리는 동안 내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번 개같은 스피드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미소가 생겼다. 나를 이 꼴로 만든 Sorry를 찾아 복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

 

생각보다. 미국에는 Sorry란 작자가 많았다. 내 기억에는 Sorry는 분명히 백인이었는데. 대체로 동양계들이 툭하면 자신이 Sorry라고 하지 않던가. 그 녀석의 부인이나 친척이겠거니 싶어 Sorry란 녀석들은 무조건 복수에 감행했다.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었다. 나보다 빠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미 전역의 FBI와 경찰은 나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번개같이 빠르다는 뜻으로 ‘볼트’라고 지칭했다. 꽤 괜찮은 이름이었다. 아무튼 나, 볼트의 복수는 멈추지 않았다.

 

 

#4

 

어느덧 미국에서 생활한지 6개월 째, 여기서 만난 자메이카 친구들은 꽤 친절하다. 잘 곳 먹을 곳 없을 때 자리를 마련해주고 가끔씩 영어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그들이 내 한국 이름을 물었는데. 내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는 말했다.

 

 

 

“응, 난 비에 죽고 다시 태어난 사람. 우사인(雨死人)이야. 그러니까. 우사인 볼트라고 불러줘”

 

‘우사인! 우사인!’ 발음하기 쉽다며 좋아하는 자메이카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by 광끼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음  (0) 2011.11.18
디지털 VS 아날로그  (2) 2011.07.25
뉴미디어 시대는 밝아오는데  (0) 2011.07.20
바스코와 블랙풀  (0) 2011.05.23
감기  (0) 201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