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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감기


 지하 세계의 생활이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연구 명목으로 처음 이 곳을 방문했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조교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랬던 내가 이 곳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 줄이야. 

 

 사하라 사막지대 1000m 지하에 구축된 언더그라운드 시스템(Under-ground System)은 본래 카다피 대령의 영생을 위해 연구소 겸 은거지로 구축된 곳이었다. 나는 프로젝트의 핵심인 그의 영생을 담당했고 2011년 초, 영생의 꿈은 성공적인 연구를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시위가 한창이던 리비아에서 카다피 대령이 ‘나는 결코 이곳(리비아)을 떠나지 않는다’라 발언한 것은 이 지하세계를 염두한 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카다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유명인사가 이곳에 모인 건 2012년 쯤이었다. 2011년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재난이 (일본 지진에 이어, 백두산 폭발은 아시아 전체를 죽음으로 이끌 만큼 너무 끔찍했다.) 급기야 2012년엔 전 세계로 번진 것이다. 수억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 세계는 큰 슬픔에 빠졌다. 이 중대사를 논의하기 위해 전 세계의 수뇌부는, 지구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언더그라운드 시스템에서 회담을 개최했다.

 

 수뇌부는 현 상황을 감기(減期)라고 칭했다. 재난으로 인해 인구 감소 뿐만 아니라 (활발한 지각 활동으로 인한) 대륙의 크기감소 등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뇌부는 ‘한시적 영생’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언더그라운드 시스템에 있는 모두가 ‘지구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영생의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지구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모두가 인류 번식의 의무를 갖고 있다며, ‘한시적 영생'이야 말로 감기에 대한 최선의 대응방안 임을 거듭 강조했다. 카다피는 그들의 언더그라운드 시스템 거주를 허가하였으며, 동시에 나는 ‘한시적 영생’ 프로젝트의 요직을 맡게 되었다.

 

 고민거리는 ‘한시적 영생’의 현실성이었다. 영생은 가능했지만 영생의 기한을 한정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정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몰래 ‘자신만은 영생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내가 프로젝트에서 할 수 있던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시적 영생‘이라는 이름의 ’영생‘세포를 주입하는 것이 전부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지구가 안정기에 접어든 것은 이야기되지 않을 뿐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매주 ‘사하라 홀’에서 진행되는 정례 회의에선 농담 따먹기에 불과하나 ‘우리의 영생도 곧 끝나간다’는 대화가 자주 나온다. 영생하지 못할까봐 불안해진 그들의 모습이 매우 재밌다. 매주 보고되는 ‘외부세계의 상황’에 관한 영상을 볼 때면 가관이다. 얼마 전 제작된 영상에서는 황폐해진 땅을 일궈내는 젊은이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재밌던 건 영상이 나오는 동안 회의장 곳곳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다, 열이 난다' 며 회의장을 뜨는 사람이 꽤 많았다. 영생세포를 주입하는 동안 모두에게 건넸던 농담이 생각났다.

 

“영생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재 도와드릴 수 있는 건 ‘한시적 영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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