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ing

번역과 음악.


‘번역된 텍스트는 정말 뒤떨어지는 것인가. 번역으로 무엇인가가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는가.’


# <사고의 용어사전>의 번역이라는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은 배반자의 행위라고 한다. 특히 시를 쓰는 시인은 언어를 생물로 다루기 때문에 번역은 배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번역을 다른 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물론 한 언어로 표현된 내용이 다른 언어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하에서.

# 부신은 도자기 조각을 말한다. 그리스에서는 조각을 둘로 나누어, 면이 일치하면 상대의 신원을 보증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symbol은 그리스어 부신 symbolon에서 왔다.) 저자는 번역 역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된 ‘면’이 오리지널 텍스트의 ‘면’과 맞물리게 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작이 의도한 세부적인 요소까지 파악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때로는 원작자의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의 말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 아닌, 양쪽의 언어를 아우르는 큰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란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올바른 번역은 없다. 하지만 총체적인 상황, 보편적인 상황에서 가장 잘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번역이 ‘좋은 번역’인 것이다.

# 작곡 역시 하나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이는 악기를 통해서 표현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한없이 자유롭던 음은, 악기를 거치면서 상당히 한정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는 당연하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완벽하게 다른 형태로 발현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이 가진 매력처럼, 뮤지션들은 한정적 형태의 ‘음’에 마술같은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더욱 복잡해질 수도, 간결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와 음악에서 나타나는 이미지가 일치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부신의 면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양쪽의 언어를 아우르는 큰 언어를 만들어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2012.02.07  광끼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습 두번째 이야기  (0) 2012.02.29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review'  (0) 2012.02.17
역습  (0) 2011.12.08
걸음  (0) 2011.11.18
디지털 VS 아날로그  (2) 201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