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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거울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나를 보여주는 유리다.'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 앉아있다. 컴퓨터 위에 붙어있는 종이 문구. 책을 보다가 뭔가 있어 보이는 같아 노트 찢어서 붙여놨는데, 정작 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위치 때문이겠거니 싶어, 헐렁해진 테이프를 다시 뜯어 이번에는 마우스 패드 근처에 붙여놓는다. ' …' 마우스 움직이는데 종이 문구가 걸리적 걸린다. 눈에는 들어오긴 해서 좋긴한데.. 이게 뭐시기 하다


작곡한지 5년째, 3 작곡가다. 'Hey Jude' 같이 모두가 좋아하는 곡을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음악 인생인데, 이게 뜻대로 되질 않는다. '형님, 요즘은 1주일만 이슈 끌어도 1년치 돈은 번거에요.' 후배 용석이 말에 귀가 솔깃해, 어느샌가부터 후크 뭐시기 곡들을 끼적거린다. 요즘은 악기가 좋을 필요도, 화성학 적으로 뛰어날 필요도 없다. '쿵쿵' 드럼소리 크고, 전자 사운드만 많으면 된다. 이쁜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주면, 내겐 돈이 들어온다. 말이 맞는 같기도 하다. 곡이 별로라던 사람들도,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좋다고 야단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한 거다.


아까부터 신경이 자꾸 쓰이기 시작했다. 문구 말이다. 마우스에 걸려서 그런게 아니라, 이번엔 머리에서 걸리기 시작했다. 음악, 그래그래, 문구를 보니까 생각나는건데, 음악은 거울과도 비슷하다. 이게 나를 비춰주는거니까.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이 큐베이스에 전달되는 거고, 한계는 큐베이스의 한계인 셈이다. 말인지 모르다면 '원판 불변의 법칙'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아무튼 나는 거울을 보면서 내 자신을 읽어내고, 음악을 만드는거다. 컴퓨터 음악이 음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화장 기술 발전만 하겠는가. 조작과 조작을 일삼으며, 그렇게 음악은 만들어지는거다.


5 음악쟁이 였으니, 내 이름이 작곡가로 명시된 음악은 꽤 많다. 근데 거울같은 것들이 손을 지나면 본질을 찾는 성질이 있나보다. 즉, 거울이 유리가 되는 것이다. 어느샌가 나를 비추던 거울은, 유리가 되어 나를 쇼윈도에 가두어 놓는다. 투명한 유리 안에 나는 진열되고, 사람들은 나를 쳐다본다. 즐거워 해주면 좋겠거니 싶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갈 , 다시 유리는 거울이 된다. 나와 거울은 다시 내 작업실로 들어온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듯, 나는 다시 음악을 만든다. 더 이쁘게, 더 듣기 좋게.


비틀즈를 좋아했다. 그들의 감성을 좋아했고, 그들의 신선함을 좋아했다. 레논의 얼굴도 좋아했다. 매카트니의 발도 좋아했다. 화장으로 떡칠한듯한 내 음악을 손에 든채,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다들, 거울이 있었나요. 다들, 그 거울을 보며 자신을 읽었나요. 혹시, 그 거울이 유리가 되어 당신들을 가두지는 않았나요. 홧김에 이 거울들을 와장창 깨뜨리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비틀즈의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이제 나는 거울이 없다면 나를 읽을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최선일 수도 있다. 


다시 거울에 집착한다. 음악이 만들어진다. 드럼 소리가 '쿵쿵'거려 좋다. 전자 사운드도 보다 강렬해서 좋다. 사람들이 들썩 거릴 생각에, 통장에 돈이 들어올 생각에, 조금은 힘을 난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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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라는 주제로 오랜 만에 글쓰기 시작.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에서 '거울' 관련 내용이 떠올라서 좀 참고해봤다. 개요없이 글을 막 풀어 나가다 보니 확실히 막히는게 있다. 그래도 일단은 꾸준히 글을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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